경기도 양평의 작은 양조장 ‘코드브루어리’에서 이승민은 오늘도 발효탱크의 온도를 체크하며 데이터를 기록한다. 전 네이버 개발자가 어떻게 MZ세대를 사로잡는 막걸리 양조사가 되었을까.


노트 1. 코드와 막걸리의 첫 만남

양평의 작은 언덕 위, ‘코드브루어리’라는 독특한 간판이 걸린 양조장에서 이승민(29)은 발효탱크 앞에 서 있다. 손에는 태블릿이 들려있고, 화면에는 온도와 pH 수치가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고 있다. 3년 전만 해도 그는 판교의 네이버 본사에서 검색 알고리즘을 개발하고 있었다.

“개발자 시절에는 매일 밤 11시까지 야근이었어요. 스트레스가 극심했죠.” 승민의 눈에는 그때를 회상하는 피로가 스쳐지나간다. “그러던 중 회식 때 마신 막걸리가 제 인생을 바꿨어요.”

2021년 가을, 프로젝트 마감에 쫓겨 연일 야근하던 승민은 팀 회식에서 처음으로 막걸리를 제대로 맛봤다. 그동안 소주나 맥주만 마셨던 그에게 막걸리의 깊은 맛은 충격이었다. 달콤하면서도 시큼한 맛, 그리고 뒤에 남는 은은한 쌀 향.

“코딩할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어요. 복잡한 알고리즘처럼 여러 맛이 층층이 쌓여있는 거죠.” 그날 밤 집에 돌아온 승민은 막걸리에 대해 검색하기 시작했다. 발효 과정, 누룩의 역할, 지역별 특징… 마치 새로운 프로그래밍 언어를 배우는 것 같았다.

주말마다 전통주 박람회를 찾아다니며 다양한 막걸리를 맛봤다. 그러면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을 발견했다. “젊은 사람들이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맛들이 많더라고요. 트렌디하면서도 전통을 지킨 막걸리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노트 2. 알고리즘을 버리고 누룩을 선택하다

2022년 초, 승민에게 인생을 바꿀 기회가 찾아왔다. 회사에서 희망퇴직을 받는다는 소식이었다. 동료들은 “미쳤다”며 만류했지만, 승민은 이미 마음을 정했다.

“사실 몇 달 전부터 퇴사를 고민하고 있었어요. 막걸리에 대해 공부하면서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뭘까’를 계속 생각했거든요.” 그는 담담하게 말하지만, 그 결정이 얼마나 큰 용기를 필요로 했을지 짐작이 간다.

퇴사 후 승민은 본격적인 양조 공부를 시작했다. 국순당 전통주 연구소에서 6개월간 양조 기초를 배웠고, 전국의 양조장을 돌며 장인들의 기술을 익혔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경남 하동의 85세 양조장 할아버지와의 만남이었다.

“할아버지가 저한테 말씀하셨어요. ‘젊은 친구가 왜 이런 힘든 일을 하려고 하느냐’고. 그때 깨달았죠. 전통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젊은 감각으로 발전시키는 것도 필요하다는 걸요.”

할아버지는 승민에게 50년 된 누룩 종균을 나눠주며 말했다. “이걸로 네 방식대로 해봐라. 다만 술의 혼을 잃지는 말고.” 그 말이 승민에게는 새로운 도전의 시작점이 되었다.

양평에 작은 양조장을 차린 건 2022년 여름이었다. 서울과 가깝지만 자연환경이 좋고, 임대료도 저렴해서였다. 부모님께는 차마 양조장을 한다고 말씀드리지 못하고 “작은 사업을 해보겠다”고만 했다.

노트 3. 디버깅하듯 양조하다

첫 6개월은 재앙이었다. 개발자 시절과 달리 물리적인 실패는 되돌릴 수 없었다. 발효에 실패한 막걸리 1000리터를 버리는 날, 승민은 정말로 포기하고 싶었다.

“코딩은 잘못되면 다시 짜면 되잖아요. 하지만 양조는 달라요. 발효가 실패하면 몇 주간의 노력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거든요.” 그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첫해에만 50번도 넘게 실패했어요.”

하지만 승민은 개발자다운 방식으로 접근했다. 매번 실패할 때마다 온도, 습도, pH, 당도 등 모든 데이터를 기록했다. 발효 과정을 24시간 모니터링하는 IoT 센서도 직접 만들었다.

“전통 양조법에 데이터 사이언스를 접목했어요. 패턴을 분석해보니 실패하는 조건들이 보이더라고요.” 그는 자신만의 ‘막걸리 알고리즘’을 개발했다. 온도와 습도에 따른 최적 발효 시간, 누룩의 양과 쌀의 비율 등을 수치화한 것이다.

2년째 되던 해, 드디어 만족할 만한 맛이 나왔다. 전통의 깊이는 유지하면서도 MZ세대가 좋아할 만한 깔끔하고 상큼한 맛이었다. “할아버지가 준 누룩에 제 기술을 더해서 완전히 새로운 막걸리가 탄생한 거죠.”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2년째 겨울이었다. 난방비와 재료비로 적금이 바닥났고, 아직 제대로 된 제품도 없었다. 부모님께 사실을 털어놓을까 고민했지만, 차마 실망시킬 수 없었다.

“그때 할아버지가 찾아오셨어요. 제가 만든 막걸리를 맛보시더니 ‘이제 제법 술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한 마디가 승민을 다시 일으켜 세웠다.

노트 4. 깃허브에 올린 막걸리 레시피

2023년 가을, 드디어 ‘코드막걸리’가 탄생했다. 이름부터 개발자다웠다. 라벨 디자인도 코딩 터미널을 모티브로 했고, 도수와 당도를 프로그래밍 변수처럼 표기했다.

“처음엔 주변 개발자 친구들에게만 나눠줬어요. 반응이 폭발적이었죠.” SNS에 올라간 ‘개발자가 만든 막걸리’ 사진이 순식간에 바이럴됐다. 특히 라벨에 적힌 “function makeMakgeolli() { return happiness; }”라는 코드가 개발자들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

더 놀라운 건 승민이 막걸리 레시피를 깃허브에 오픈소스로 공개한 것이었다. “개발 문화처럼 양조도 함께 발전시키고 싶었어요. 누구나 제 레시피를 보고 더 좋은 막걸리를 만들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오픈소스 막걸리 레시피는 해외에서도 화제가 됐다.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는 한국 개발자들이 직접 주문하기 시작했고, 일본의 사케 양조업체에서도 연락이 왔다.

“정말 신기한 경험이었어요. 제가 만든 막걸리를 마신 구글 개발자가 깃허브에 ‘pull request’를 보냈거든요. 발효 온도 최적화에 대한 제안이었어요.” 기술과 전통주의 만남이 전 세계적인 관심을 끈 순간이었다.

온라인 주문이 폭주하면서 승민은 생산량을 늘려야 했다. 하지만 대량 생산보다는 품질에 집중하기로 했다. “코딩할 때도 완벽한 코드를 짜는 게 목표였거든요. 막걸리도 마찬가지예요. 양보다는 질이죠.”

노트 5. 전통주의 새로운 코드를 짜다

현재 코드브루어리는 월 3천병 한정 생산으로 운영되고 있다. 예약 주문제로만 판매하는데, 매달 오픈과 동시에 매진된다. MZ세대를 중심으로 ‘힙한 막걸리’로 입소문이 났기 때문이다.

“올해부터는 해외 진출도 계획하고 있어요.” 승민의 눈이 반짝인다. “실리콘밸리의 한국 개발자들이 정기 주문을 하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일본 사케 시장에도 도전해보려고 해요.”

특히 그가 개발한 ‘AI 발효 예측 시스템’이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온도, 습도, pH 등의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해 최적의 발효 타이밍을 예측하는 시스템이다.

“전통 양조사들도 관심을 보이세요. ‘젊은 친구가 재밌는 걸 만들었다’고 하시면서 배우고 싶어 하시거든요.” 기술과 전통의 만남이 업계 전체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승민의 최종 목표는 명확하다. “전통주를 세계화하고 싶어요. 사케나 와인처럼 막걸리도 글로벌 주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젊은 양조사들이 더 많이 생겨났으면 좋겠고요.”

실제로 그의 영향을 받아 IT업계를 떠나 양조업에 뛰어든 후배들이 벌써 세 명이나 된다. “제가 보여준 게 하나의 가능성이 된 것 같아 뿌듯해요. 전통산업도 충분히 혁신적이고 재밌을 수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거든요.”

저녁 무렵, 발효실에서는 내일의 막걸리가 조용히 익어가고 있다. 승민은 태블릿으로 마지막 데이터를 체크하며 미소를 짓는다. 코딩하던 손으로 빚어낸 막걸리가 오늘도 누군가에게 새로운 즐거움을 선사할 것이다.

“개발자 시절에는 사용자가 제 코드를 쓰는 걸 직접 볼 수 없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달라요. 제가 만든 막걸리를 마시고 행복해하는 사람들을 직접 만날 수 있거든요.”

전통과 기술, 과거와 미래가 만나는 이 작은 양조장에서 오늘도 새로운 코드가 써지고 있다.


이승민 대표의 ‘코드브루어리’
📍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코드로 123
⏰ 견학 투어: 토,일 14:00-17:00 (사전 예약 필수)
☎️ 031-1234-5678
📱 @code_brewery
🛒 온라인 예약: 매월 1일 오전 10시 오픈
💻 깃허브: github.com/code-brewery/makgeolli-recipe